풍장(風葬)의 바람이 불어오게 하소서!
(광양시 백운산)
계절은 봄을 마무리 하고 초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겨울은 겨울의 의미를 한껏 내 것으로 소화시켰던 시간이었다.
전라(全裸)의 모습으로 북풍한설과 마주서서 스스로를 관조하는 나뭇가지들,
동녘 하늘에서부터 미명이 시작되자 하늘과 나뭇가지는 서로를 부둥켜안기 시작했다.
하늘이 있어야 나뭇가지가 보이고 나뭇가지가 있어야 하늘의 존재감이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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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동면의 시간을 통하여 사고의 윤활유를 칠하는 시간이다.
잠재의식을 살찌우고 사고의 경계를 넓히며
상상력의 날개에 근육을 더하시는 시간이다.
그럼으로 겨울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나머지 계절을 행군함에 있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고
사막에 샘솟는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신록이 세상에 무게를 더한 오늘의 즈음에
지난겨울, 풍장을 치르는 듯 숨죽이고 서 있었던 옷 벗은 나뭇가지들의 산하를
신록의 세상에 살포시 포개어 본다.
아 빨리 이 무거운 옷들을 벗어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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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 산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자연의 잉태와 출산과 성장과 그 종말을 고스란히 바라볼 수 있다는 그 관조, 짜릿함이다.
덩달아 내가 살아 있음을, 자연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가 넘쳐 나지 않을 수 없다.
지리산둘레길을 돌고 난 후 그 관성의 법칙이 내 몸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리산의 지형들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꿈틀거리고 골짜기들이 내 손바닥의 지문처럼 자리를 잡은 듯하다.
또다시 그 둘레길을 내가 찾아간다면
그들도 나를 손잡아 주고 나도 그들에게 좀 더 진솔하게 다가갈 것 같다.
이제 나는 둘레길에서 떠나 더 깊은 골짜기, 능선을 탐하려고 한다.
계곡에 나를 가두어 보기도 하고 낭떠러지에서 나를 던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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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은 봉대길 100번지 나의 작은 서재의 서쪽 창문에 그림처럼 걸려 있는 봉우리다.
그 앞에는 매봉이 붓 끝처럼 그 모서리가 짜릿하고
한켠 뒤로 물러 서 있는 백운산 봉우리는 뭉텅하여 크게 볼품은 없는 산이다.
이들은 섬진강에 발을 담그고 있어서 늘 섬진강으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는다.
백운산 꼭대기는 겨울이 되면 늘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못한 마음은 마치 가까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을 향한 미안한 마음과 비슷했다.
늘 바라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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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시작된 첫 주말, 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더 이상 견뎌 내기가 힘들어졌다.
오늘따라 바람이 세차다.
섬진강가로 나아가니 화개장터 아래 남도대교 밑으로 노고단 발 바람이 거세가 몰아친다.
그 바람들이 섬진강 미루나무를 건드리니 이파리들이 파르르 떨리고
그 떨리는 소리들이 섬진강 양안을 가득 채운다.
한재로 올라가는 긴 골짜기는 광양시 다압면 하천리와 구례군 간전면 중대리에 걸쳐 있다.
굳이 이런 것들을 따질 일은 아니지만
산은 이런 것들도 무시해 버리고 그냥 백운산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다.
차를 중간 즈음에 세워 두고 걸어 올라가는 길목은
서울대학교 임업연구림으로서 다양한 수종들의 나무들이 잘 보존되고 있었다.
손대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적절한 관리는 우리의 숲에 미래의 가치를 더하게 할 것이다.
한재는 구례군 따리봉과 광양시 백운산의 중간으로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는 종주길 에서도그 움푹 들어간 부분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재가 재다웠다.
이 길을 통하여 진상이나 광양과 순천 지방의 사람들이 옛날에는 화개장터에 장을 보러 넘어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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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에서니 바람이 더욱 거세다.온 몸을 바람에 맡기면 회오리를 타고 어디론가 날아갈 것 같았다.
등 뒤에서 얼마나 거세게 바람이 불어오든지 가만있어도 등을 밀어 나를 백운산에 까지 데려다 줄 것 같았다.
그 바람에 자연 밀식된 소나무들이 서로 부딪쳐 엉켜 붙기도 하고
아직 한창인 철쭉꽃이 바람에 후드득 떨어져 떼굴떼굴 굴러 나자빠지기도 했다.
산 아래 지역에는 4월 초에 이미 만개를 하고 그 수명이 다했을 철쭉이 아직 이곳은 한창이다.
한재에서 신선대를 향해 한 시간 즈음 올라가는 시간 내내 바람은 쉬지 않았다.
바람을 등지고 나부끼듯 신선대를 향한다.
등산로 양쪽에는 키 큰 야생 철쭉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서서 나를 향해 도열하고 있었다.
꽃들의 도열, 바람의 합창, 신선대의 호령은 그 어떤 사열보다 더 짜릿하고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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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에 서다.
동과서가 통하고 남과 북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천왕봉에서 시작한 산들의 물결이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그 파도가 또 다른 파도를 만들어 내가 서 있는 신선대를 창일하게 만들어 버렸다.
순간 지리산과 백운산은 동일한 하나의 산,
같은 혈맥으로 이어져 서로 통하며 공동 운명을 띄고 있다는 생각이 내 가슴을 쳤다.
둘이 아니라 하나, 같은 산, 같은 혈맥이다.
이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일찍이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고
백운산과 지리산을 각각 다른 산으로 구분 짓는 경계라고 사람들은 말해 왔었다.
그럼으로 나 또한 지리산과 백운산은 이름도 다르고 실질적으로 다른 산으로 알고 있었다.
손에 잡힐 듯 지리산의 주능선이 출렁인다.
노고단에서 시작하여 반야봉, 토끼봉과 형제봉, 촛대봉과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그 혈맥이
내가 서 있는 백운산으로 밀려왔다.
나누고 분리시켜 버리는 습성이 나도 모르게 자연에게 까지 내 원죄를 덮어 씌워 버렸던 것이다.
이들에게 미안했다.
다시는 다른 산이라고,
다른 부류라고, 너희들은 나와 다르다고,
성분이 다르고 출생이 다르고 그 근원이 다르다고 말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백운산은 거대한 바위로 된 산이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그 찬 기운 덕분에 눈이 녹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나 보다.
밧줄을 잡고 어렵지 않고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다.
여전히 지리산 주능선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주능선이 만들어 내는 끊임없는 쓰나미를 내가 맞고 서 있었다.
섬진강은 내 발아래 그 유연한 몸놀림으로 바다를 향하고 있다.
바구리봉이라고도 하는 억불봉은 겨드랑이에 큰 바구니 하나 끼고 서 있고
내 무릎 즈음 높이에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백운산, 이는 지리산의 또 다른 이름,
나누려고 해도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산에서
나는 내가 가진 오류들의 풍장(風葬)을 치른다.
낡은 사고의, 허황된 꿈의, 영원하지 못할 것들의 풍장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