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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칼럼] 미션 임파서블, 석전대제를 구하라 - 최정철 (1)
TheFestival 기자    2016-09-07 23:23 죄회수  7650 추천수 5 덧글수 4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미션 임파서블, 석전대제(釋奠大祭)를 구하라

 <1>

최정철  / 문화기획자 축제연출가 & 現수원화성문화제예술감독

 



여 년 전만 해도 설마설마 했다. 한류. 그런데 오늘 날, 그 한류라는 것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세계적 히트 상품이 되어 난리도 이런 난리 없음을 잘만 보여주고 있다. 뭐, 그 덕분에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제고는 아주 찰 지게 되고 있고 말이다. 다양한 문화를 얼마든지 능수능란 볶아먹고 지져먹고 날로 회쳐먹는 실력 발휘하는 문화 강국으로서의 이미지 선양 뿐 아니라 수출 시장 확대 및 정착에의 밑거름 역할 수행 등 한류는 막강한 기능을 음으로 양으로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우리는 이 한류를 국가브랜드로 상정하고 오늘도 열심히 우려먹고 있다. 그런 한류의 메뉴를 말할 때 대체로 영화, TV드라마, K -Pop, 화장품, 한글, 한식 정도만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도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음을 간과하지는 않은지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아, 뭣이 중헌디?

오래 전, 국가브랜드위원회라는 조직에서 ‘국가브랜드’의 의미를 ‘국가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를 총칭하는 개념’이라고 정립했다. 그렇다면 국가에 대한 호감도는 무엇으로 분발시킬 수 있을까? 당연히 그 국가의 이미지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곧 문화이고. 이렇게 양질의 문화로 호감을 산 이후에 품위 있는 교린(交隣) 태도와 군사력, 경제력 등이 가세함으로써 ‘신뢰 확보’라는 정점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한류는 대한민국 국가브랜드로서의 당당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국악계의 거장 박범훈(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 선생은 한류 붐 초창기 때 진즉에 이런 말씀을 일갈했다. “진정한 한류는 우리의 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워놓고 봐도 뉘어놓고 봐도 백 번 옳은 말씀이다. 작금의 한류는 대체로 최신 대중문화 상품들이다. 즉, 현대적 사조로 갖추어진 프로그램 위주이지 우리의 고유 전통 문화를 토대로 한 것이 드물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오늘 날 한류의 기본 속성이다.

1982년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 개최된 전세계 음악인들의 귀추가 집중된 공연 ‘Pasic 82 - Percussive Arts Convention’을 발칵 뒤집어 놓으며 세계적 음악으로 일거에 부상함으로써 초창기 한류 초병 역할을 했던 ‘사물놀이’는 이제는 노환으로 뒷전에 물려난 상태이고, 사물놀이에 힘입어 이런저런 ‘한류’스러운 프로그램들이 앞에 서서라 뒤에 서거라 많이도 등장했으나 그 내부에는 한민족 고유의 문화를 제대로 버무리는 공력이 제대로 담기지 못했다. 아니, 나름 충실히 버무려 있겠지만 딱히 확연한 장르로서의 물결로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겠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대 문인이요 실학자였던 박지원은 그의 저서 초정집서(楚亭集序)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역설했다. ‘옛 것을 본받아 새 것을 만들어낸다’라는 뜻의 이 말을 박지원은 왜 했을까? 당시 박지원이 생존했던 시기의 조선에서는 중국 강남 지방에서 발흥한, 수호전과 서유기 금병매 등으로 대표되는, 100년도 더 지난 명말청초(明末靑初) 문풍(文風)이 범람하고 있었다. 박지원은 현실을 벗어나 말기적 증세를 보이던 당시의 주자학이 못마땅해서도 그랬겠지만 이 문풍을 더 크게 비판하기 위해 법고창신을 부르짖었다. 이유인 즉, 백화(白話)가 난무하는 등 고전의 정통성을 찾기 어렵고 내용도 그 수준의 급이 낮다는 것. 다시 말해 명말청초의 문풍은 지극히 가벼운,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천박한 유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조의 출현은 어느 시대에도 필요하다. 그래서 박지원은 새것을 만들고 받아들이되 그 근간에는 옛 것의 원기가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서 이 법고창신을 내세운 것이다. 박범훈 선생의 일갈은 바로 이 법고창신의 오늘의 되새김이다.

문무에 두루 조예가 깊었던 정조 임금께서는 젊은 신하들을 가르치는 자리에서 공자께서 하신 말씀인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뜻을 이렇게 풀어 가르침을 내렸다고 한다.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을 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옛 것을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정수(精髓)를 알게 된다.’라고 말이다.

이제 법고창신과 온고지신을 오늘의 한류에 적용시켜 보자. 우선 이 말들을 분해하다 보면 그 종착점인 ‘민족 고유의 문화와 사상’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그 민족 고유의 문화와 사상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다시 새로운 원기를 뽑아내는 것. 이를 바탕으로 참신한 코드 만들어 내기. 맥락 충분히 통한다.

한류도 이런 차원에서 재정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현재 자리를 잡은 프로그램들은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고 새로운 것, 아니 잊고 있었던 우리 뿌리의 정수를 찾아내어 한류의 근본을 닦아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수십 년 전 우리의 전통 농악에서 사물놀이라는 탐스러운 열매가 맺어졌듯이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이 지켜온 정수로써 세계인들로 하여금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도록 하는 것. 이것이 한류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라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따져서 현재의 한류 코드들은 한 시대의 유행에 머물 수 있고 언제 외면당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를 품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장구한 생명력을 갖춘 근본적인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다. 이러한 대 명제를 놓고, “우리 것이 중한 것이여~!” 한 번 복창하고서 이제 우리네 전통에서 다시 시작하는 원기 충만한 한류 개발 방안으로서 내가 평소에 가장 격하게 주장하는 장르를 소개해 볼까 한다.


석전대제는 한민족의 문화 자산

현재 행해지고 있으나 아쉽게도 만인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정통 문화 프로그램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우선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석전대제(釋奠大祭)다. 석전이란 문묘(文廟)에서 공자와 사성(四聖), 공문십철(公門十哲), 송조육현(宋朝六賢) 등의 21위와 최치원을 위시한 우리나라 명현 18위(한 때는 별도의 중국 유현 94위까지 포함하기도 했으나 1949년 퇴출됨. 공문십철과 송조육현 중 사현도 이때 함께 퇴출되었으나 1953년 복위됨) 등 총 39위의 유가 성인명현들을 모시는 제사 의식으로, 고려 성종 11년(992년)에 설립된 국자감(國子監)에서의 문선왕묘(文宣王廟) 석전 시행을 시작으로 해서 조선에 이르러서는 종묘제례와 더불어 나라의 가장 큰 의례로 봉행되었다. 그리고 그 맥이 꾸준히 이어져 성균관을 비롯 전국의 234개 향교에서 봄가을 공히 치러지면서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니, 천 년을 넘는 장구한 역사를 통해 이 땅에서 행해지면서 국가적 의례로 엄수된 우리 겨레의 큰 문화유산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중국인에 의해 창제된 유교와 중국의 성인 명현들을 모시는(물론 동이의 명현들도 모시지만) 제사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리고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볼 때 주변국인 한반도 땅에서 유교가 자리를 잡았다고 뭐 특별난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독일의 미술가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의 견해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각 문화권은 중심부 문화와 주변부 문화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16세기 유럽의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일어나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중심부 문화만이 위대하고 주변부 문화는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르네상스 전개 과정에서 독일과 네덜란드의 르네상스가 주변부 문화라고 해서 낮게 평가되는 일이 없으며, 그들이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펴져나감으로 인하여 유럽 문화권의 르네상스는 보다 풍부한 내용을 갖추었다고 말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한국이 동아시아의 주변부 문화 성격을 지녔다는 점은 이런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교가 아무리 중국 땅에서 발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유교를 우리는 삼국시대 때부터 받아들였고 통치 이념 및 사회의 중심 사상으로 이 땅에 정립시켜 민족 보전의 지팡이로 삼았던 것이다. 더욱이 나름대로 찬란한 유교 문명의 꽃을 피우기까지 했다. 이렇게 보면 유교의 정신세계는 중국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명현들은 우리 민족에게 지표가 되었던 스승들이었기에 우리가 제사로 모시는 것이다. 이렇듯이 석전대제는 우리 민족과 끊을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게다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 석전대제의 원형을 올곧게 유지하고 있는 전세계 유일의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물론 대만과 중국에서도 이 제사를 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맥이 끊어졌고 장개석 정부가 들어선 후에야 우리 것을 벤치마크한 후 자체적으로 형태를 법제화해서 시행하고 있는 바, 우리가 행하고 있는 형태와는 여러 가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서 배례법이 다르다. 우리는 엎드려서 하는 부복(仆伏) 절을 하지만 그들은 서서하는 굴신(屈身) 절의 자세를 취한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알고 있듯이 공산 정권이 들어서고 문화혁명 등을 거치는 와중에 그들의 맥도 끊어졌으나 얼마 전 관련 학자들을 한국의 성균관에 보내 석전대제를 참관, 그 원형을 습득해 간 후 몇 년 전부터 저네들만의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현재 대만이나 중국은 석전대제를 공자 탄강일에만 시행하고 있으니 춘추 2회 시행하는 원칙에서도 벗어나 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이제 석전대제의 종주국은 대한민국인 것이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희귀성과 고유성을 갖춘 문화 프로그램으로서의 석전대제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고, 이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 보호함으로써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대내외에 널리 표방했으면 한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석전대제를 세계의례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2>편에 계속

태그  뭣이 중헌디,Pasic82,온고지신,부복 굴신,문선왕묘,성균관,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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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Festival   2016-09-19 13:05 수정삭제답글  신고
참고로 본 칼럼 제2편은 http://www.thefestival.co.kr/news/serial/2622/
                  제3편은 http://www.thefestival.co.kr/news/serial/2629/
  위 칼럼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Michael   2016-09-13 07:32 수정삭제답글  신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 첫정일(상정일)에 지내며 음악과 춤 즉아악과 일무가 곁들여진다는 게 저의 상식인데 석전대제 공부좀 해야겠네요
DONDEMO   2016-09-08 01:13 수정삭제답글  신고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모든 문화의 태동을 세심히 들여다 보면 중심부 문화와 주변부 문화가 따로따로 존재 하지요 && 축제도 주제프로그램 부대프로그램 각각 존재하듯이^^ 그런데 적어도 핵심프로그램은 제대로 해야한다는 기본정신을 이 칼럼의 필자는 강조하고 있거늘.. 축제 주최기관의 자성을 촉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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