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중국의 문헌 중의 하나인 한서동이전(漢書東夷傳)에는 우리 나라의 문화가 많이 다루어져 있는데, 중국 하소강(夏少康) 때에 우리 가무문화가 중국에 전해져 연희되었다는 내용이 씌어 있다.
춤과 음악을 어우르는 우리나라 축제에 관한 정확한 문헌상의 근거는 삼국지(三國志),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에서 찾을 수 있는데,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부여의 정월 영고(迎鼓), 고구려의 시월 동맹(東盟) 그리고 동예의 시월 무천(舞天) 등에서 온 마을 사람이 한데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연중행사가 있어 공동의례적인 집단행사 즉, 축제가 일찍이 우리나라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중요무형문화제 제13호 "강릉 단오제"는 단오날 지방관리의 대표와 지방유지가 제사를 지내고 난 뒤
그지역 가장 큰 무당이 주관하는 굿판이 벌어지고, 각종 민중악기로 주민 모두가 흥겨운 놀이에 참여한다.
한국 전통 축제의 모습이 잘 남아있어 유네스코에서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의 걸작"으로 꼽기도 했다.
축제는 빌 축(祝)자와 제사 제(祭)자가 합친 말로서, 온 마을 사람이 한데 모여 천신을 섬기는 종교적인 제천의례라는 점에서 볼 때 잉카제국의 태양신제나 마야문명의 신년의례와 맥을 같이 한다. 거기에 온 동네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농사일에 지친 피로를 풀며 마음껏 즐기면서 풍년을 기원하고 추수감사를 하는 공동체적 의식이었던 셈이다.
함경도 속담에 “동서 춤추소”라는 말이 있다. 잔치마당의 노랫가락에 흥이 겨워 춤을 추고 싶지만 전통적인 유교사상이 뿌리 내리면서 양반체면에 몸을 쓸 수는 없고 만만한 동서보고 나가서 춤 춰 보라는 말에서 나왔다 한다. 음주가무와 집단의례에 2등 가라면 서러운 한민족인데, 우리는 오랫동안 끼를 펼치지 못하고 살아 왔다. 또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고유의 민속놀이가 말살되다시피 하였고 60~70년대를 거치면서 ‘증산 수출 건설’을 외치고 ‘일하러 가세’를 부르며 놀이나 축제는 게으른 베짱이 문화로 치부되어 왔었다.
80년대 들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새로운 볼거리나 먹거리를 찾게 되고, 일상의 틀을 깬 나들이 문화가 생겨 났으며, 새로운 놀이문화욕구가 일기 시작했다. 90년대에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한 축제의 수는 이미 축제의 나라 프랑스의 지역축제 수를 능가하게 되었다. 문화관광부 자료에 의하면 작년 1,400여 개의 지역축제가 성행했다고 한다.
▲ 제1회 금산인삼축제 (1980년)의 시가행진 모습
한국이 축제의 나라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우리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인터넷 강국을 만들어 냈고, 조상대대로 물려 받은 가무능력의 끼로 노래방문화와 응원문화를 수출해 냈다. 이제 예술성을 갖춘 체계화된 집단의례 행사를 멋지게 연출해 냄으로써 축제국가 대한민국을 건설할 때다. 축제산업이 가져다 주는 경제효과를 향유할 날도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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